그리스도교 소공동체의 사목적 의의
J.G. 힐리
〔1975년도에 반포된 교회의 공식 문헌 「현대의 복음 선교」(58항)에서 최초로 언급된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특히 제3세계 안에서 크나큰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교회의 새 모델로서 교회의 새로운 현존 방식으로 자처하고 있다. 힐리 신부는 이 글에서 21세기를 향한 세계 공동체의 사목적 의의를 규명하고 있다. (주는 생략함)〕
탄자니아에서 개최된 “그리스도교 소공동체 건설”에 관한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에 우리는 간혹 흑판에 “교회란 무엇인가? “또는 “교회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적곤 하였다. 활기찬 토의가 항상 전개되었다. 세미나 참석자 대다수가 교회를 “하나의 건물”, “하나의 제도”로서, 심지어 “주교들과 사제들로서만 구성된 집단”으로서도 묘사함으로써 발언을 시작하였다. 교회는 “백성”, “지역 그리스도인들의 집단”, “한 공동체”라고 말하는 자도 몇몇 있었다. 갈수록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과 체험을 서로 교환하고 난 다음에 교회는 “신앙인들의 공동체이다” “우리는 교회이다”라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것 같았다. 결국에 대부분의 세미나 참석자들이 “교회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보다 나은 것이라는 데에 동의하였다.
다른 기회에 네 명의 참석자가 흑판에 “교회를 묘사해 보라”는 요청을 받았다. 각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이 그리고 있는 것을 보지 아니한 채 자기 몫을 다하였다. 대부분이 그 안에 사람들이 있는 교회 건물 또는 사람들이 없는 교회 건물을 그렸다. 몇 사람은 교황에서부터 시작하여 교회의 여러 구성원들에 대한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거나 한 원을 그리며 다 함께 둘러앉은 한 무리의 그러스도교인들을 묘사하였다. 여러 가지 그림들을 평가한 후에 대부분의 세미나 참석자들은 마침내 교회는 사람들의 공동체, 특히 사람들의 조그마한 공동체라는 데에 동의하였다. 이제 우리의 본래 질문에로 되돌아가 보자. 갈수록 교회는 “신앙인들의 공동체”로 묘사되고 있다. 교회 공동체의 한 대본은 교황, 주교들과 몇몇의 대표 사제들,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로마의 세계 주교 시노드에 한데 모여 있는 것을 묘사한다. 또 다른 대본은 세계의 도처에 있는 대도시 본당에서 신도들이 주일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세번째 대본은 소 또는 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성서를 읽고 자신의 일상생활에 적응시키기 위하여 한데 모이는, 간혹 가난한 사람들로 구성된 소집단―의 일반 대중 집회를 묘사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 나는 부상되는 세계 교회의 맥락 안에서 “오늘날 교회가 되는 새로운 방식”이며 교회의 모델이 되는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를 그려 보려고 한다.
1. “세계 교회”의 기원, 뜻과 의의
“세계 교회”(World Church)란 1979년 칼 라너가 만들어 낸 신학적 전문 용어이다. 칼 라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로마 가톨릭 교회가 최초로 공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세계 교회로 구현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하면서 이렇게 진술하였다.
“교회는 세계 교회가 되고자 한다면 마땅히 전세계에 걸쳐 토착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것은 주요한 사항이다. 즉 교회가 다른 문화들의 이 같은 근본 차이점들을 이해하고 인식하여 그로 말미암아 세계 교회가 되고 또 바오로 식의 단호함으로 이 같은 인식으로부터 필연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는 교회가 되든지, 그렇지 아니하고 서구 교회로 존속하고 또한 그리하여 결국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의도를 저버리는 교회가 되든지 하는 문제는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보편 교회를 묘사하기 위하여 통상 사용되는 용어들로는, 큰(Big), 범세계적(Global) 교회, 큰(Great) 교회, 더 큰(Greater) 교회, 국제적(International) 교회, 대규모(Large) 교회, 다문화(Multicultural) 교회 그리고 전세계(World-Wide) 교회 등이 있다. 그러나 세계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시기의 정신을 생생히 나타내는 것으로, 즉 여섯 개 대륙의 지역 교회들 간의 친교, 실행과 신학에 있어서 풍요롭고 놀라운 다양성을 지닌 국제 교회를 묘사하는 것으로 채택되어 왔다.
세계 교회의 친교(Koinonia)는 평신도에 관한 1987년도 세계 주교 시노드의 쟁점이었던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에 관한 사도적 권고(「평신도 그리스도인」) 안에서 강하게 부각되었다. “친교의 교회론은 공의회 문헌들의 중심 개념이고 기본 개념이다”(19항). 이것은 그리스도교 소공동체의 신학과 실행을 이해하는 데에 주요한 문맥이다. “본당”에 관한 항목은 이렇게 진술한다. “이러한 종류의 모든 본당들이 참으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지역 교회의 권위자들은 다음과 같은 일들을 육성시켜야 한다. 신도들이 하느님 말씀의 친교를 나누고 상호 봉사와 사랑 안에서 이를 드러낼 수 있는 소규모의 기초 공동체 또는 이른바 ‘생활’ 공동체, 즉 그들의 사목자들과 친교를 이루는 이런 공동체들은 교회적 친교의 진정한 표현이며 복음 선포의 중심이다”(26항).
“스승이신 하느님의 협력자들”이라는 항목에서는 다음과 같이 진술되어 있다. “본당 내부에 있는 소규모 교회 공동체들은 교회적 친교와 사명에 대한 더욱 심오하고도 예민한 의식과 체험을 제공하여 줌으로써 그리스도인 교육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다”(61항).
세계 교회는 자신의 친교와 일치에 의거하여 풍부한 다양성과 다원론을 묘사한다. 각 대륙에 퍼져 있는 그리스도교 소공동체의 무수한 여러 가지 표현들은 한 가지 놀라운 예이다.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들은 지역 장소와 상황들 안에서 토착화된 공동체이다. 1979년 AMECEA(동아프리카 주교회의 연합회) 연구협의회는 그리스도교 소공동체가 아프리카 그리스도교를 발전시키는 데에 가장 훌륭한 방편임을 역설하였다.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들은 또한 복음 메시지를 아프리카 문화와 전통에 참으로 적절한 것이 되게 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편인 것처럼 보인다”. 이와 유사한 서술들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도 선언되었다.
2. 교회의 모델로서 부각되는 그리스도교 소공동체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로마 가톨릭 교회 내에서 비교적 새로운 현상이다. 그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 안에 언급되지는 않았다. 그 공동체가 최초로 언급된 교회의 공식 문헌은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58항)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교 소공동체의 설립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교회 특히 제3세계의 교회에―교회의 새 모델로서, 교회가 되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의식 계발을 위한 역동적 힘으로서 그리고 평신도들이 봉사와 복음 선교에 적극 참여하게 되는 과정으로서―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제3세계 가톨릭 교회의 세 영역―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이 시로 독자적으로 최근에 이 공동체들의 비상한 성장을 체험해 왔다.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가 1956년 브라질, 바라 도 피라이 교구에서 그리고 1963년 파나마, 파나마 대교구의 산 미구엘리토 본당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주교들이 후원한 창조적인 사목적 노력으로서이지만 아래로부터의 교회로서 지역 평신도들로부터 부상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라틴 아메리카는 20,000개가 넘는 기초 공동체를 소유하고 있으며 브라질에만도 10,000개가 있다. 이 공동체가 해방 신학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기초 공동체가 교회의 실행과 교회의 쇄신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세계 교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라틴 아메리카 기초 공동체를 방문한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무수한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미네소타의 뉴음 교구의 레이몬드 루커 주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이것은 아마 10-20개 가정으로 구성된 소집단으로서 매주 한 번씩 모여 복음을 공부하고,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삶 안에서 그 의미를 새겨보며 세상의 변혁을 위하여 힘쓴다. 이런 소공동체들이 브라질 전역에 수천 개나 있다. 나는 그 가운데서 많은 공동체를 관찰하였고 그들의 지도자들을 만나 보았다. 그 공동체들은 그 이웃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역동적 힘, 세상 안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주요한 한 요소가 되었다.” 독일의 로텐부르크-스투트가르트의 발터 카스퍼 주교는 이같이 말한다.
“기초 공동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는 내가 페루의 리마에 있는 소름 끼치는 슬럼가를 가 보았을 때에 그리고 아프리카 6개국을 여행하였을 때에 나에게 명확해졌다. 우리가 만일 이 기초 공동체를 혁명의 소조직체들로 간주한다면 그것을 전적으로 오해하는 것이 된다. 이곳 그리스도교인들은 거의 사제 없이 함께 모여 성경을 봉독하고 해석하며, 기도하고, 노력하며 전례에 대비하고, 교회 생활의 구체적 의문점들에 관해 충고하며 결단을 내리고, 여러 가지 인간 문제점들에 관한 의견을 나누며 해결하려고 고심한다. 여기서 평신도 활동과 책임은 아주 강하고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여기서 친교로서의 교회가 새로이 살아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교 소공동체가 한스 큉의 표현대로 “교회의 새 모델”, “교회 역사에 있어서의 새로운 범례”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아래로부터의 교회이다. 이 교회 안에서는 조그마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 공동체는 전체 교회의 구조를 위한 토대이다. 사목적 과업은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또한 그리고 나서 공소, 본당과 교구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핵심이다. 말라위의 패트릭 칼리롬 주교는 말한다.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를 동아프리카에서의 사목적 관건으로 삼는 것은 근본적인 실행이고, 사목적 역점에 있어서의 주요한 전환이다. 그것은 우리의 사목적 체계, 방안과 실행을 깊이 있게 변혁시키기 위하여 신중히 계획된 것이다. 우리는 백성들의 평범한 삶들이 발생되는 보다 작은 공동체들이 교회의 기본 단위가 되는 새로운 체계를 채용할 필요가 있다.”
3. 그리스도교 소공동체의 풍성한 의미에 대한 새로운 모색
그리스도교 소공동체가 지닌 풍성한 의미를 실증해 보이기 위하여 나는 여러 가지 명칭들, 용어들, 표현들, 그리스도교 소공동체 또는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에 대한 묘사와 의미의 일람표를 작성해 보았다. 알파벳 순으로(Action Group, Action-Oriented Group에서부터 시작하여 Youth Community, Youth Small Community에 이르기까지) 인용된 명칭과 용어들이 모두 901개였다. 이 모든 명칭, 용어, 표현, 묘사 그리고 의미들은 전세계에 걸쳐 1976년부터 1989년까지의 기간 동안 발행된 서적, 잡지 기사, 논문, 기타 인쇄물들로부터 수집된 것이다. 몇 가지 이 명칭과 용어는 다른 언어 특히 스페인어와 프랑스어에서 번역된 것이다. 긍정적인 명칭과 용어들이 있는가 하면(Birth of a New Church, Hope of the Future Church) 부정적 명칭과 용어들도 있었다(Enemy of the Pope, Underground Church). 가톨릭적 표현들이 있는 반면에(Catholic Community of Underlined Bible, Catholic Lay Community Movement) 개신교식 명칭도 있었다(House Church, Protestant Base Community). 중요한 기준은 “소” 또는 “기초”라는 몇 가지 형태가 인용되거나 암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명칭들, 용어들, 표현들, 묘사들과 의미들은 비평이나 평가 없이 열거되어 있다.
이 일람표를 분석해 본다면 아래의 사항이 드러난다.
1) 명칭과 용어들이 대단히 많고 광범위하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이는 명백히 그리스도교 소(또는 기초)공동체가 사람들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함을 가리킨다.
2) 무수한 명칭과 용어들이 지역적 영역에 따라(예컨대, 북아메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그리고 아프리카의 명칭들이 서로 다르다), 종파나 교파에 따라(예컨대, 로마 가톨릭적 명칭과 개신교적 명칭 사이에 차이가 있다). 그리고 목표나 목적에 따라(예컨대, 영적 또는 신심 단체들과 사회 활동 내지는 연대성을 추구하는 공동체들이 서로 구별된다.) 각양각색이다.
3) 의미가 아주 다양하다는 것은 건전하고 고무적인 일이다. 이는 그리스도교 소공동체가 취할 수 있는 무수한 형태와 모습들을 반영한다. 그것들은 발전하고, 성장하며 새로운 방향들을 취한다. 이런 폭넓은 다양성은 기층 민중들의 절실한 요구,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반영하기도 한다.
4) 많은 명칭과 용어는 교회 내의 새로운 것, 활기에 찬 것, 생명력 있는 것, 역동적인 어떤 것에 대한 추구와 모색을 반영하고 있는데 그 어떤 것이란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를 “교회가 되는 새로운 방식”이라 부름으로써 요약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5) 많은 명칭과 이름은 순수한 그리스도교 소공동체일 수도 있고 또는 그렇지 아니할 수도 있는 “소집단”과 관련된 것이다. 또한 많은 명칭과 용어는 성장과 발전의 다양한 단계에 있는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리스도교 소공동체 또는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를 지칭하는 상이한 많은 명칭과 용어들을 분석해 볼 때에 아래 네 가지 주요한 유형 내지는 범주들이 드러난다.
1) 장소의 공동체: 이는 지리, 지역, 인근 거주지 또는 모임에 따라 구별되는 무수한 종류의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들과 관련된 것이다. 예를 들면 함께 또는 아파트식 가옥이나 연립 주택, 근로자를 위한 주택 단지나 교외 거주 지역(도시형)에 사는 사람들이 있고 혹은 가까운 이웃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집단들 또는 같은 이웃 지역(시골형)에 살고 있는 확대 가족들이 있다.
2) 개별적 후원의 공동체: 이는 서로를 도와주며 서로 가진 것을 나누는 원조 집단들의 폭넓은 다양성과 관련된 것이다. 예를 들면 기도 그룹, RCIA 그룹, 치유 그룹이 있다.
3) 관심사 또는 쟁점의 공동체: 이는 한 가지 특별한 관심사 또는 사항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집단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연대 의식 그룹과 정의·평화 그룹이 있다.
4) 특수한 이해 관계의 공동체: 이는 직업이나 공동 관심사에 따라 함께 모이는 특수한 그룹과 관련된 것이다. 예컨대, 청소년, 교사, 대학생, 간호원 그룹 따위가 있다.
2), 3), 4) 유형들은 본당 구조와는 별도로 형성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해 둘 만한 사항이다. 이는 교회의 모델로서의 그리스도교 소공동체가 본당 내에서 또는 전통적 본당과 유사한 곳에서 그리고 이런 본당 바깥에서도 형성·발전되는가 하는 문제를 위하여 주요한 사목적 의미를 지닌다.
또 다른 분류는 그리스도교 소/기초공동체 조직의 출발점이나 원칙 위에 근거한 것이다. 세 유형이 있다: 1) 장소 지향형 2) 인간 지향형 3) 과업 지향형
4. 그리스도교 소공동체에 대한 아프리카의 체험
라틴 아메리카의 그리스도교 소공동체가 문서나 다른 경로를 통해 잘 알려진 반면에 아프리카의 소공동체에 관해서는 덜 알려져 있다. “살아 있는 교회 공동체”는 1960년대 초 자이레에서 시작되었다. 다양한 소공동체 노력들이 동아프리카에서(1967년 탄자니아, 무소마 교구의 Nyarombo 본당에서 그리고 1971년 잠비아, 루사카 교구의 성 가롤로 르왕가 본당에서) 발생되어 오면서 1973년의 동아프리카 주교회의 연합회(AECEA) 연구협의회로 인해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이 회의 중에 주교들은 참으로 지역적인 교회가 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우리는 교회 생활의 활성화를 역설하고 시골 지역과 도시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기초공동체를 후원해야 한다. 교회 생활은 일상 생활과 작업이 그 안에서 영위되는 그런 공동체 위에 근거를 둔 것이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생활과 노동 중에 진정한 상호 인격 관계들을 체험하고 또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러한 기초적이며 융통성 있는 사회 그룹 위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1976년도의 AMECEA 연구협의회는 이같이 역설하였다.
“그리스도교 소공동체의 체계적 양성은 동아프리카의 장래에 있어서 주요한 사목적 우선 사항이 되어야 한다.”
15년간 건실한 경험을 쌓은 현시점에서 동아프리카에서는 그리스도교 소공동체의 구체적 청사진이 부각되고 있다. 이 청사진 안에는 기준들(이 공동체가 지녀야 하는 특징과 요소들)과 현재의 실제 모습(이 공동체의 현실)이 내포되어 있다. 소규모의 모든 그리스도교 집단이 모두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아니므로 그리스도교 소공동체가 아닌 것을 먼저 지적해야겠다.
1)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기도 집단이 아니다. 기도는 그러스도교 소공동체의 근본 요소이다. 기도 집단이 점차로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로 발전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참된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그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며 단순한 기도 그룹이기보다는 교회와 사회의 전반적 생활 안에로 통합된다.
2)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레지오 마리래, 빈첸시오회, 가톨릭 노동 청년회, 성심회, 제대회 따위와 같은(협의회나 본당 조직체로 불리우기도 하는) 사도적 그룹이 아니다. 이런 사도적 그룹은 특별한 재능이나 관심사 위에 근거한 그리고 간혹 국제적 헌장을 갖춘 사도적 그리스도 교인들의 자발적 운동으로서 교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그것들과 다르다. 이 공동체는 지역 교회의 근본 단위나 조직 또는 ‘구성 요소’이다. 그것은 공동체들간의 친교인 본당의 참여 및 협동 구조와 연관되어 있는 으뜸가며 기본적인 교회 핵심이다. 모든 그리스도교인이 그리스도교 소공동체에 소속되어야 한다. 이 공동체는 특정 지역 공동체와 생활 상황 안에 뿌리내린 것이다.
3)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공소 또는 마을 교회가 아니다. 간혹 지역 평신도 협의회, 교리교사, 성가대 따위를 거느리는 이런 사목적 구조(공소, 마을 교회)들은 보통 10-20개 가정들로 구성된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들보다 규모가 대체로 더 크다. 공소나 마을 교회는 지역 그리스도교 공동체이지 그리스도교 소공동체가 아니다. 이같이 구분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전통적 본당 교회론 내지는 신학과 그보다 새로운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론 내지는 신학을 구별하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동아프리카에서의 시골 지역이나 도시 지역에 있는 전형적 그리스도교 소공동체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을 살펴보기로 하자.
1)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작다. 15명에서 20명 사이의 성인들(이에 포함되는 아이들의 숫자는 다를 수 있다)을 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2) 이 공동체는 대개 회원들 중 한 명의 집에서 모인다.
3) 이 공동체는 사제 없이, 주일미사/전례가 거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모임을 갖는다.
4) 교리교사가 지도자는 아니다. 지도자 또는 봉사자는 이 공동체 내에서 형편에 따라 다양하게 선출된다.
5) 이 공동체는 사제나 사목적 일꾼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지역 수준의 회원들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6) 이 공동체는 몇 가지 종류의 성서 나눔 또는 성서 묵상을 정기적으로 갖는다. 회원들은 신앙과 생활을 통합시키려 애쓴다.
7) 이 공동체는 아프리카의 가치와 관습의 테두리 내에서 인격 관계와 연대성(함께 나누는 것, 함께 일하는 것, 함께 경축하는 것)을 역설한다.
8) 이 공동체는 몇 가지 종류의 계획된 실천적 행위, 상호 원조 그리고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활동 방안을 갖고 있다.
9) 이 공동체는 본당 구조에 참여한다. 예컨대 각 공동체(또는 이 공동체들의 각 집단)는 공소나 본당 협의회 내에 대표를 둔다. 또한 상이한 소공동체들 간에 몇 가지 협동 체계와 연락망이 있다.
간혹 이 열 가지 기준이 각 그리스도교 소공동체 안에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그 모든 것을 통합하는 도상에, 발전 과정 중에 있다. 동아프리카 그리스도교 소공동체의 발전 단계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을 위하여 Missionalia의 1986년도 4월호 「그리스도교 기초공동체: 교회 중심이냐 세상 중심이냐」를 참고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동아프리카의 그리스도교 소공동체의 몇 가지 현재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
1)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이웃 그룹이다. 시골형은 같은 인근 지역에 있는 확대 가족들의 친교 단체이다. 도시형은 대개 한 아파트 주택이나 연립 주택 또는 근로자 주택 단지 안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2)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는 하부 중산 계층 사람들로 구성되고 또 일부 공동체들은 중산층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3) 혼합된 인종 집단으로 구성된 그리스도교 소공동체가 보통이지만 서로 다른 경제 계층의 사람들로 혼합된 예는 흔치 않다.
4) 그리스도교 소공동체의 대다수가 여성들이다. 몇 가지 조사에 의하면 일부 그리스도교 소공동체 회원들의 60~ 70%가 부인들과 소녀들이다.
5)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라 불리우는 대부분의 소그룹들은 실제로 성서 봉독과 토론, 간청 기도 그리고 가끔 묵주 기도를 역설하는 기도 집단에 불과하다.
6) 많은 그리스도교 소공동체들이 주중에 또는 한 달에 두 번 개최되는 성서 봉사/모임 중에 이루어지는 규칙적인 모금의 소중한 관습을 갖고 있다.
(원문: Joseph G. Healey 신부, “Today's New Way of Being Church, Pastoral Implications of the Small Christian Community, Model of Church in the World Church Towards the 21st Century”, Review Omnis Terra, N. 206, 1990년 3월, 123-133면. 번역: 대구 가톨릭 대학 최영철 신부) *